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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정부가 시장 눈치를 보게 된 사건

역사의 물줄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는 하루가 있다. 영국에는 1992년 9월 16일 수요일이 그랬다. ‘블랙 웬즈데이’라 불린 이날 런던 외환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 환율의 향방에 따라 영국이 유럽의 일원이 될지, 고립된 섬으로 남을지 결정되는 날이었다.   외환시장 개장 전부터 매물이 쌓이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 흐름을 탔다. 하락을 이끈 주범은 퀀텀펀드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투자자 조지 소로스였다. 그는 영국 국채를 빌려 공매도하는 수법으로 파운드 하락을 이끌었다.   이에 맞서 영국 정부는 파운드 사수에 나섰다.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 이날 오전 기준금리를 10%에서 12%로 올렸다. 과격한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파운드가 지속해서 하락하자 오후에 금리를 다시 1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영란은행은 보유 외환을 털어 환율 방어에 착수했다. 240억 달러를 실탄으로 투입했다. 시장과의 치열한 공방전은 보유 외환이 바닥 날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영국이 유럽의 환율조정 메커니즘인 ERM에 잔류해 유럽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환율 최저선인 파운드 당 2.77 독일 마르크를 유지해야 했다. 1990년 영국은 안정적 독일 통화인 마르크에 환율을 고정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의도로 ERM에 가입했다. 전임 총리인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ERM 가입이 시기상조라 봤다. 소로스를 비롯한 시장 세력은 대처의 견해를 지지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독일의 3배인 15%에 달했고 생산성은 독일보다 매우 낮았다. 설상가상으로 걸프전쟁 이후 혹독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체력이 약한 파운드의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환율 최저선 사수가 불가능하다고 본 투기세력은 영란은행과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소로스의 파운드화 매도 금액은 100억 파운드에 달했다. 그날 저녁 영국 정부는 ERM 탈퇴를 발표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파운드는 며칠 만에 달러 대비 25% 폭락했다. 영국 정부는 일개 헤지펀드 투자자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당했다. 영란은행은 33억 파운드의 손실을 보았고, 소로스는 10억 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3조5000억원)를 벌었다. 시장이 거대 국가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에 충격받은 유럽은 통화 통합을 가속했다. 1999년 최초의 단일 통화인 유로가 출범했다.   블랙 웬즈데이 이후 시장에 대한 국가의 도전은 더는 용납되지 않았다. 정책 당국은 시장에 끌려다니며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 시그널을 지속하며 주가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성재 / 퍼먼대 경영학 교수마켓 나우 정부 시장 외환시장 개장 시장 눈치 시장 세력

2024-05-06

[마켓 나우] 체중 감량의 경제학

투자자들이 새로운 체중 감량법을 주목하고 있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인 GLP-1이 비만 치료제로 전용되고 있다. 비만율이 40%로 치닫는 한국을 포함해 체중 조절용 약물 시장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비만이 아닌 사람들까지 더 날씬하게 보이려고 비만 치료제를 복용한다. 또 GLP-1 계열 약물은 치료 중단이 부를 요요현상 때문에 지속해서 복용해야 한다.   비만 치료제는 경제적으로 세 가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비 패턴의 변화, 노동시장의 변화 그리고 사회 분열의 증가다. 다이어트 치료제에 돈을 더 쓰려면 저축을 줄이거나 다른 품목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치료제 구매는 결국 다른 곳에 쓰던 돈의 일부가 제약회사로 흘러간다는 의미다. 약값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식비보다 비싸다. 즉 외식을 덜 한다고 해서 약품 구매비가 충당되는 것은 아니다. 비만 치료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소비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체중 감량으로 사회적 자신감을 얻은 사람들은 의복이나 엔터테인먼트에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다. 이 역시 다른 부분에 나가던 기존 지출을 줄인다.   다이어트 치료는 세 가지 방식으로 노동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첫째, 비만으로 인한 편견을 완화할 수 있다. 비만인 사람, 특히 비만 여성은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실제 능력을 과소평가 받는다. 편견으로 인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할 수 없다면 생산성도 그만큼 떨어진다. 비만을 개선하면 이러한 편견으로 인한 영향이 줄 수 있겠지만, 계속 비만 상태인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 둘째, 비만이 개선되면 비만 관련 질병도 감소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결근 횟수가 줄어든다. 이는 경제적으로 노동 공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셋째, 비만이었던 근로자의 체중이 줄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결근 횟수가 줄면 기술을 쌓을 기회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업무 효율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치료의 가장 부정적인 위험은 사회적 긴장을 부추기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때문에 과체중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될 위험이 있다. 고소득 소비자는 부담 없이 비만 치료제를 즐겨 복용하며 외모를 가꿀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비만과 저소득층을 자동으로 연관 짓는 편견에 더욱 시달릴 것이다. 저소득층은 고가의 비만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할지 모른다.   GLP-1과 같은 비만 치료제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이 약물이 초래하는 변화는 경제의 여러 부문과 사회 집단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폴 도너번 /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경제학 체중 비만 치료제 체중 감량법 다이어트 치료제

2024-04-24

[마켓 나우] 시장은 미국 대선 어떻게 예측하나

바이든이냐 트럼프냐? 미국 대선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경제와 시장은 선거를 예측한다. 업종별 주가 등락을 분석해 당선자를 예측하는 방법도 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업종과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업종의 주가 부진이 올해 들어 뚜렷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불신하는 트럼프는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차보다 화석에너지와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풀이는 트럼프 우세를 점치는 여론조사 흐름과도 일치한다.   업종별 주식 등락에 따른 예측은 한 측면만 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주가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재생에너지 업종의 주가 부진은 현재의 고금리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막대한 자금과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라는 업종 특성상 자금 차입이 필수적이다. 전기차 관련 주가 약세 역시 선거보다는, 어떤 제품이 보편화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둔화하는 ‘캐즘(chasm, 골)’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오히려 바이든이 우세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1분기 미 경제는 3% 가까이 성장하는 등 예상 밖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학자 크리스토퍼 에이컨과 래리 바텔스가 14번의 대선(1964~2016년)을 분석한 결과, 선거 전 2분기 동안의 1인당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양당 후보의 지지율 격차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했다. 유권자의 단기기억 편향 때문에 최근의 경제 성과가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성장과 더불어 거시경제 성과의 다른 축인 물가는 바이든에게 불리하다. 2022년 6월을 고비로 미국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지만 아직 시원하게 하락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소폭 상승하는 움직임마저 나타났다. 2010년대 초반 ‘아랍의 봄’이나 지난주 한국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물가 상승과 민생 문제는 선거에서 주요 이슈임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11월 5일 선거일까지, 목표 직전 최종 구간을 뜻하는 ‘라스트 마일’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7월 금리 인상이 멈추면서 금리 인하가 기대됐지만, 인플레이션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있다. 주말에 발생한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및 유가 상승과 맞물려 심리가 악화하고 인플레이션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중앙은행의 대응이 경기를 급락시킨다면, 바이든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구도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시장의 관점에서는 경기호조를 중심으로 바이든에게 호의적인 여건이 조성될 전망이다. 신민영 / 홍익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마켓 나우 미국 시장 거시경제 성과 업종별 주가 신재생에너지 업종

2024-04-17

[마켓 나우] 이번에도 제조업이 중국 경제 살릴까

중국의 산업 활동에서 국가 주도의 활성화 조짐이 뚜렷하게 보인다. 전체 산업 매출과 이윤이 작년 하반기에 겪었던 침체 국면을 극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당국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조업에 의존한 것은 과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주택 부문이 침체하고 코로나 이후 서비스 부문 회복세가 대체로 마무리됨에 따라 제조업이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하고도 빠른 해결책으로 보인다.   중국이 최근 산업 부양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과도한 신용 확대 없이 중국의 단기 경제성장 둔화를 완화하는 것이다. 제조업은 많은 부채가 필요하지 않으며, 첨단 제조업 분야의 성장은 중국이 추구하는 자급자족 목표 중 일부를 달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강력한 산업 기반 강화는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구조적인 흑자 유지는 위안화 약세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미국과의 금리 차이로 인해 위완화 약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중요하다.   셋째, 장기 성장 추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기존 연구들이 내리는 결론에 따르면 높은 생산성 부문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는 것이 전반적인 생산성 증대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 중 하나다. 특히 기술 집약 산업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소식이 있다. 중국은 여전히 수출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 더는 단순 노동집약형 제품에서 다른 신흥 국가와  인건비를 앞세워 경쟁하지 않지만, 생산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인건비가 저렴하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 부양 강공책이 수반할 수 있는 부작용과 리스크가 있다. 향후 몇 년간 중국의 민간 소비 증가세가 둔화하여 4~5% 성장 범위 내에서 안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산업 부양책으로 인한 국내 공급과잉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는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무역적자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방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강화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직접무역이 상당히 감소했지만, 실제로는 우회무역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대부분 분석가가 예상한 것보다 두 국가 간 무역 디커플링(decoupling), 즉 연계성 약화나 분리의 정도가 크지 않았다. 이는 무역마찰이 더욱 징벌적인 보호무역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이즈 루 /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중국 제조업 첨단 제조업 단기 경제성장 생산성 부문

2024-04-10

[마켓 나우] 광물 부족 시대에 맘껏 못 웃는 자원부국들

2030년쯤 되면 ‘에너지 전환’, 즉 화석 연료에서 재생 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체제를 바꾸는데 필수적인 주요 광물들의 세계적인 공급난이 시작될 것이다. 각국 정부는 니켈·코발트·구리·리튬과 희토류 금속의 안정적인 국내 생산과 공급 확보를 위한 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 특히 호주와 중국은 주요 광물 생산국이며 가공 시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자원 부국들은 매장량 확보를 위한 글로벌 경쟁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이는 규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다. 각국은 경제·산업 개발 전략을 주요 광물 확보를 둘러싼 경쟁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몽골과 같이 광물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기술 전문성·인프라·자본이 부족한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그리고 미국의 동맹국들) 양쪽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광물 부국들은 국내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광산법과 규제를 개정하는 쪽으로 산업정책을 펼칠 수 있다. 개정 내용에는 광업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지분 증대, 로열티 지급액 증액, 가치 창출 과정에서 수익 극대화를 이루기 위한 조치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수출 제한, 세제 변경, 정부계약 조항의 변경 등이 더욱 널리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 광물의 리쇼어링(reshoring, 자국으로 생산 시설 이전)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우방국으로 생산 시절 이전)은 큰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가공된 광물에 대한 기존 공급 계약 체계는 점진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주요 광물의 채굴과 정련은 환경 부담이 크며 상당한 양의 폐기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높은 환경 비용은 생산 증대를 제한할 것이며, 지난해 9월 몽골 서부의 희토류 탐사에 대한 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역 사회의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반면 중국의 주요 광물 가공 산업은 산업 능력이 미흡하거나 환경 규제가 엄격한 국가들에 매력적이다.   주요 광물의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전략은 개발도상국의 성장 기회를 제한한다. 점점 기세를 올리고 있는 보호주의 규제 등은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무역관계 확대가 가져올 이익을 억제할 것이다. 또 풍부한 자원을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싶어하지만, 미국과 중국 중 한쪽하고만 연계하도록 강요받는 경우 이익이 줄어든다. 세계 시장의 분열로 인한 자본유입 감소와 기술확산 지연은 경제 발전을 더욱 저해할 것이다. 해너 코틸리언 /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아태 시니어애널리스트마켓 나우 자원부국 광물 광물 매장량 광물 부국들 주요 광물들

2024-03-31

[마켓 나우] 기후 리스크도 생성형 AI가 막는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협력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이 19일 보고서 ‘프로젝트 가이아’를 발표했다. BIS가 스페인은행·독일연방은행·유럽중앙은행과 손잡고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리스크 분석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활용을 꾀한다. 옛 그리스에서 대지와 풍요를 상징하는 모신 가이아(Gaia)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자 창조의 근원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테라(Terra)다. 첨단기술로 기후 리스크를 분석해, 환경문제에 대응하려는 프로젝트에 ‘지구의 인격신’ 가이아가 잘 어울린다.   기후 리스크에는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 리스크가 있다. 물리적 리스크는 가뭄·홍수·산불 같은 기상이변이나 장기적 기상 패턴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재산 피해를 말한다. 이행 리스크는 저탄소 전환정책 시행으로 발생하는 탄소집약적 산업의 자산가치 하락과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을 포함한다. 따라서 기후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에 투자한 금융기관은 손실을 볼 수 있고,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규제 당국에 기후 리스크 측정은 큰 도전과제다.   효과적 기후 리스크 분석을 위해서는 투자자·중앙은행·감독기관이 기업의 기후 관련 지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지표 분석에 상당한 손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 표준화가 미비해 사용 가능한 정보의 유용성과 비교 가능성이 제한된다. 프로젝트 가이아의 비전은 규제 당국이나 연구기관이 기업의 기후 관련 공시를 검색하고 데이터를 추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방형 웹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있다. 특히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텍스트·표·그림 등 모든 요소를 포함한 비정형 문서에서 구조화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2023년 글로벌 평균기온이 온도 관측을 시작한 이후 174년 만에 역대 최고치다.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1.45도’ 상승한 것으로, 2015년 파리협정이 제시한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인 ‘산업화 대비 1.5도 온난화’까지 고작 0.05도 남았다.   기후 리스크에 더해 인구 리스크까지 우리 고민이다. 인구가 2050년 4774만명으로 감소하며,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확률이 평균 68%로 분석된다. 또한 기후 리스크 자체가 경제성장률의 추가적인 하방 압력과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구를 하나의 상호 연결된 생명체 네트워크로 이해하고 신의 이름을 앞세운 프로젝트 가이아처럼, 기술혁신으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눈앞 파이 나누느라 싸울 시간이 없다. 조만간 파이가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지게끔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박선영 /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마켓 나우 리스크 생성형 기후 리스크 금융리스크 분석 이행 리스크

2024-03-27

[마켓 나우] 인플레이션이 주는 ‘느낌’이 중요한 이유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자 많은 이탈리아인이 격분했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룻밤 사이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이 0.52 유로(1000리라)에서 1.00유로로 뛰어올랐다. 다른 물품 가격은 오르지 않거나 아주 약간만 올랐지만 연일 오르는 에스프레소 가격에 높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던 일은 경제적으로는 문제없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왜 정치적으로는 문제인지 잘 보여준다. 올해처럼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여하는 해에는 정치권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논란으로 키우는가에 따라 금융시장도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주 구매하는 물건의 가격은 잘 기억하지만, 가끔 구매하는 물건의 가격은 쉽게 잊어버린다. 오늘날 일부 품목의 가격은 실제로 내려가고 있다.   일상 소비재 품목들은 종종 편의를 위해 가격을 ‘반올림’ 처리한다. 이는 구매 빈도가 높은 물건들의 가격 인상 폭이 더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탈리아에서 1000리라 동전을 대신해 1유로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카페 주인 입장에서는 신속한 서비스를 위해 에스프레소를 사는 손님이 동전 하나만 내도록 하는 것이 편했다. 손님 입장에서는 가격이 낮은 품목이 큰 폭으로 인상된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는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식품의 가격 인상 폭이 전체 물가상승률의 4배를 웃돈다. 가격은 센트보다는 달러 단위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달러 단위로 가격이 올라가면 가격 상승 폭도 큰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물가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과거의 가격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최대 18개월까지도 기억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공정’하다고 기억하는 가격보다 물건의 가격이 더 높으면 불만을 품는다. 소비자도 시간이 흐르면서 공정한 가격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만, 이는 신속한 과정은 아니다.   이런 다양한 요인 때문에 많은 유권자가 인플레이션이 실제보다 높다고 여기며 불만을 갖게 된다. 정치인이 인플레이션 지표들을 잘 살펴본다면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음을 알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물가가 적정 수준이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은 투표소에서 정치인들을 응징할 것이다. 폴 도너번 /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 지표들 1유로 동전 전체 물가상승률

2024-03-20

[마켓 나우] ‘매그니피센트 7’ 대안으로 떠오른 지방채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 M7)’의 기세가 약해지고 있다. M7은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톱7 기업, 즉 애플·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의 통칭이다. 이들 종목은 지난해 107%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고, S&P500 종목의 전체 수익률인 26.3%에서 3분의 2에 기여했다.   M7은 팬데믹 때부터 큰 폭의 초과수익률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식 평가액은 비교 불가 수준으로 성장했다. 2024년으로 접어들며 M7의 지속적인 엄청난 이익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은 더 높아졌다. 생성형 인공지능(GAI)의 도입 속도에 따라 이들의 주가 향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변곡점에 도달한 듯한 M7은 하방 위험에 취약하다. 또 전체 주식시장은 다가오는 실적 시즌에서 상승 촉매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분산투자를 고려해야 할 때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완만해지고 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목표인 2% 이하로 지속해서 하락 중이라는 확신이 들 때”를 기다리며 금리 인하를 미루고 있다. 불확실한 투자 환경에서 M7 투자비중이 높은 투자자라면 자산군 다각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작년 광범위한 랠리에서는 뒤쳐지긴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위험보상 프로파일을 지닌 채권, 특히 미국 지방채도 대안 중 하나다.   2024년 미 국채 수익률은 전반적으로 상승했고 현재 10년물 수익률은 4%를 웃돈다. 경제성장 둔화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올해 말에는 약 3.5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의 수익률 하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채권 듀레이션을 연장하려는 투자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비과세 채권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채 대비 지방채 수익률은 연초 들어 최근까지 상승을 이어왔다. 1~10년 만기의 AAA 등급 미 지방채의 수익률은 동일 과세 조건인 경우 미 국채 수익률과 거의 비슷해졌다. 이 때문에 우량 지방채는 현금을 과잉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에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신용 리스크를 감수할 의향이 있다면 듀레이션이 긴 우량 하이일드 지방채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하이일드 뮤추얼펀드의 자금 흐름은 플러스로 돌아섰고, 뮤추얼펀드의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며 신규 발행은 대부분 초과 청약됐다. 펀드 공급은 향후에도 제한적일 것이다. 신용 스프레드는 낮은 부도율과 하이일드 뮤추얼펀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안정적 유지가 예상된다. 하이일드 지방채 시장은 펀더멘털과 기술적 조정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이라 말릭 / 누빈 최고투자책임자마켓 나우 지방채 대안 우량 지방채 하이일드 뮤추얼펀드 국채 수익률

2024-02-29

[마켓 나우] 오류 없는 AI 개발, ‘자유론’에 답 있다

2024년 1월 5일 알래스카항공 1282편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비행 중 측벽이 떨어져 나갔다. 2018년과 2019년에는 맥스 기종과 관련된 추락 사고가 났다.   맥스는 베스트셀러 여객기인 737시리즈의 최신형이다. 덩치가 커진 신형 고효율 엔진이 의도치 않은 양력을 발생시켜 극단적인 기수 상승에 의한 실속(失速)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대비해 ‘조종 특성 향상 시스템(MCAS)’이 추가됐다. 그러나 정상 운항 중인데도, 센서 고장으로 ‘급격 상승 중’이라고 잘못 판단한 MCAS는 계속 강제로 기수를 낮췄고 비행기는 추락했다.   조종사들이 시뮬레이터로 받는 집중 훈련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처하기, 그리고 처리 단계마다 오류 가능성을 곱씹기다. 반면 인공지능(AI)은 애초에 발생한 적이 없어 학습할 수 없었던 ‘검은 백조’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센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입력값이 틀릴 수도 있다’고 AI가 의심하지 않으면 사고는 필연이다.   AI 분야 석학인 UC버클리 스튜어트 러셀 교수는 ‘인간이 AI에게 목표를 직접 설정해주는 방식’으로 AI를 개발하면, AI를 통제할 수 없는 위험성이 생길 수 있다고 지난 1일 ‘AI SEOUL 2024’ 콘퍼런스에서 지적했다.   검은 백조 상황에 대한 러셀 교수의 대안은 단어 ‘스스로’에 있다. 그는 인간이 선호하는 목표를 AI ‘스스로’ 학습하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AI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AI도 사람처럼, 각 단계의 추론을 ‘스스로’ 의심해보고 그 종합이 궁극적 목적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따져보도록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AI의 궁극적인 쓸모는 AI가 스스로 ‘판단과 의사결정(judgment and decision making)’을 내리는 데서 나온다. AI가 스스로 이해해야 할 책으로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자유론』(1859)이 있다. ‘무오류의 전제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AI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맞으니까 옳다’가 무오류의 전제다. 밀은 내가 맞는다는 전제는 어디에도 없으니 항상 반대 의견에 감사하고, 항상 반대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대방 주장을 경청해야 참사를 낳을 수 있는 결정적인 오류를 제거할 수 있다.   AI는 인간의 문화를 학습하며 놀랍도록 닮아가고 있다. TV 정치토론에 토론자가 필요할까? 카세트플레이어를 번갈아 틀면 될 것 같다. 내용은 뻔하다. ‘나는 맞으니까 옳다’의 무한반복이다. ‘스스로 의심하기’ ‘반증 가능성 고려하기’는 사람에게도 AI에게도 꼭 필요하다. 반대를 용인하지 않은 결과는 참혹한 추락이기 때문이다. 이수화 / 한림대학교 AI융합연구원 연구교수마켓 나우 자유론 오류 오류 가능성 센서 오류 ai 개발

2024-02-12

[마켓 나우] 유럽을 뒤흔드는 분노한 농심

예산 씀씀이를 보면 그 조직을 알 수 있다. 경제·정치블록 유럽연합(EU)은 예산의 70%를 농민과 회원국의 낙후지역 지원에 반반씩 쓴다. 그렇다면 EU는 왜 예산의 3분의 2 이상을 두 곳에 써야 할까? EU 27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의 기여분은 1.4%에 불과한데 말이다. 최초의 공동정책이 농민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1962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는 회원국 농민을 공동체 예산으로 지원하는 공동농업정책에 합의했다. 1980년대 말까지 EEC 예산의 3분의 2를 농민을 위해 썼다. 이후 30여년간 폴란드와 헝가리와 같은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하면서 낙후 지역 지원이 늘고 농민 몫은 줄게 됐다.   성난 농부들이 농민의 돈줄을 쥐고 있는 브뤼셀에 집결했다. 지난 1일 벨기에 수도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은 앞으로 4년간 500억 유로(약 70조 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장 바로 옆 룩셈부르크 광장에서는 수천 명의 농부가 1000대가 넘는 트랙터를 세워두고 경적을 울렸다. 정상들과 EU 집행위원회에 분노를 표출하며 지원을 압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기후위기로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했다. 농산물 가격이 지난 1년간 10% 하락해 농부들은 곤궁해졌다. EU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그린딜을 위해 농민들에게 각종 규제를 부과했다. 질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며 비료 사용량을 축소하게 했고 가축 사육도 줄이게 했다. 심상치 않은 농심에 화들짝 놀란 EU 집행위는 지원을 늘리겠다며 농민 단체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농민의 분노가 진정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전쟁이나 기후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농부들의 요구는 지속될 것이다.   유럽 정치권도 농심을 차지하려고 바쁘다. 오는 6월 6~9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반이민과 반기후위기를 앞세운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상승세다. 이들은 그린딜에 반대하며 분노한 농민에게 표를 호소한다.   EU는 중남미 공동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하기 위해 20여년간 공들였고 2019년엔 체결에 원칙상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프랑스의 반대가 거세졌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산 값싼 농산물의 범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FTA는 유럽 공산물과 메르코수르의 농산물을 맞교환하는 셈이라 유럽의 이익도 크기에 결국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지만 저성장에 신음 중인 유럽에선 이런 정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안병억 / 대구대 교수(국제관계)마켓 나우 유럽 분노 정치블록 유럽연합 유럽 정치권 유럽의회 선거

2024-02-11

[마켓 나우] ‘수퍼’ 마리오, 차기 ‘유럽 대통령’ 될까

“현대의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19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이렇게 평가했다. 2011년부터 8년간 ECB 총재를 역임한 그는 유로존 위기의 구원자로 유명하다.   2012년 상반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거론됐고 다른 ‘피그스’(PIGS, 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로 경제위기가 확산됐다. 그해 7월 말 드라기는 “ECB는 유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조치라도 취할 것이다”고 발표했다. 그는 돈을 대규모로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대폭 확대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다.   당시 유럽연합(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내부에는 ‘게으른 베짱이’인 그리스 등의 지원을 거부하는 세력이 강했고, 프랑스 등 재정적 여력이 있는 다른 회원국도 돈주머니를 과감하게 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ECB 총재의 공개적인 발언과 과감한 정책 실행은 유로존 붕괴 리스크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덕분이었다. 이 일로 그는 ‘수퍼 마리오’ 별명을 얻었다.   그가 다시 하마평에 올랐다. ‘EU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럽이사회(EU 정상회담) 상임의장 자리의 유력 후보자다. 상임의장은,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위원장과 함께 EU를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2009년 말 신설된 이 직책은 임기가 2년 반이며 연임할 수 있다. 샤를 미셸 현 이사회 상임의장이 유럽의회 출마를 선언했고 당선이 유력하기에 올 7월 이 자리가 빈다. 상반기 안에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보통 EU 27개 회원국 수반들이 합의한 인물을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으로 추대해왔다. 지금까지 3명의 상임의장을 보면 드라기처럼 지명도 높은 인물이 없다. 현 미셸 의장과 초대 의장 헤르만 반롬푀이가 벨기에 전 총리 출신이고, 2014년 말부터 5년간 상임의장직을 수행한 도날트 투스크는 현 폴란드 총리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EU 주요 회원국 수반들이 자신들을 압도하는 인물을 상임의장으로 원하지 않았다.   드라기는 2021년 초부터 거의 2년간 이탈리아 총리로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거국내각을 운영하며 코로나19에 대처했다. 이 정도 풍부한 실무경험과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유럽의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드라기 전 총재의 임명에 합의할 수 있을까? 상반기에 차기 집행위원장과 함께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임명이 한 묶음으로 합의돼야 한다.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수퍼 마리오’의 귀환 여부다. 안병억 / 대구대 교수(국제관계)마켓 나우 마리오 대통령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수퍼 마리오 유럽의회 출마

2024-01-31

[마켓 나우] 누가 버블 붕괴 대처할 희망의 지도자 될까

자본주의 역사는 탐욕과 공포 사이를 시소처럼 오간다.   1920년대 미국은 자동차와 전자기기로 상징되는 신기술의 향연에 취했다. 기술혁신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는 급성장했다. 미국 경제 총생산은 42% 늘어났고 가계의 부는 두 배로 증가했다. 주식시장도 전례 없는 호황에 들떠 있었다. 1927년에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호재까지 겹쳤다.   1929년 다우존스 지수는 몇 년 전 저점 대비 6배 올랐다. 너도나도 주식을 매수하기 바빴다. 담보대출을 받아 다섯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해 10월 끝없이 오를 듯하던 주가에 급제동이 걸렸다. 넷째 주 목요일 주가지수가 10% 넘게 하락했다. 그다음 주에도 하락은 이어졌다. 그 후 다우존스 지수는 1932년까지 90% 하락했다.   시장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연준이었다. 주가의 과열을 우려한 연준은 기준금리를 3.5%에서 6%로 올렸다. 보유 채권을 대거 팔아 시중 유동성을 흡수했다. 연준의 긴축은 과도한 부채에 의지해 거품을 키우던 주식시장에 치명적이었다.   주가 폭락의 여파로 은행과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경제활동 인구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실직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대미문의 거대한 먼지 구름이 중서부 곡창지대를 덮쳤다. 극심한 한발로 농업생산이 많이 감소했다.   농민들은 농지를 찾아 서부로 떠났다. 실업자들 비명이 도시를 가득 채웠다. 불황과 공포로 사람들은 갈팡질팡했다. 이 혼란의 와중에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신뢰와 용기의 회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1933년 3월 4일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며 국민을 다독였다. 사회와 경제 개혁에도 착수했다. 뉴딜을 통해 국민에게 필요한 바를 충족시키려 했다. 경제 파탄으로 국민이 공포에 떨 때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줬다.   최근에도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지자 금리 인하를 준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주식시장에 다시 가격 거품이 일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여차하면 2000년 닷컴 버블이 재현될 듯한 분위기다.   연준은 주가 상승을 우려하지 않지만, 그로 인한 경기과열은 걱정한다. 버블이 커질수록 금리 인하는 뒤로 밀린다. 고금리가 지속되면 버블 붕괴 가능성도 커진다. 버블이 붕괴하면 어떤 공포가 닥칠지 알 수 없다. 미리 계획하고 대비해야 한다. 희망과 비전을 주는 리더가 더 절실한 이유다. 김성재 / 퍼먼대 경영학 교수마켓 나우 지도자 버블 버블 붕괴 목요일 주가지수 닷컴 버블

2024-01-28

[마켓 나우] 일본식 수십 년 장기침체에도 놀라지 말자

투자자들은 큰 경기침체 리스크 없이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경제 연착륙을 기대하며 들떠 있지만, 놀라운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2024년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다섯 가지 쟁점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의 귀환 가능성이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경험한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의 기억이 생생하다. 수십 년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의 경우처럼 세계 경제가 ‘일본화(Japanification)’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아직은 소곤거림에 불과하다. 올해 글로벌 수요를 둔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글로벌 긴축 통화정책의 영향이 경제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점, 재정부양책의 축소,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 의지 부족 등이 있다.   둘째, 우주산업이 뉴프런티어다. 무중력 상태는 화학공업을 포함한 혁신적 제조업, 특히 신약 개발에 사용되는 화합물 제조에 이상적이다. 또 결함률이 훨씬 낮은 반도체 개발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이 시도하는 상업용 우주선 발사를 계기로 올해는 우주산업이 ‘이륙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산업이 차세대 성장주 투자를 주도하는 핵심 부문이 될지 모를 일이다.   셋째, 혁신과 생산성 사이의 괴리는 오늘날 경제학 최대의 미스터리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1924~2023)는 “컴퓨터 같은 혁신은 모든 곳에서 눈에 보이지만, 생산성은 통계에서만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혁신은 통신과 교통 분야에서 일어났다. 근래 나타난 많은 혁신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획기적인 혁신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의료 분야에서 큰 발전이 있었지만 항생제나 실내배관, 냉장식품처럼 기대수명과 근로자 건강을 크게 향상시킨 과거의 혁신들과는 견줄 수 없다.   넷째, 유권자의 정치혐오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올해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40여 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된다. 선거 결과는 국가 재정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비우량 회사채에서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양적완화 환경은 세계적으로 차입을 통한 자금조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어려운 경제 환경을 만나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였다. 언제 어느 섹터에서 문제가 터질지는 알기 어렵지만, 향후 12개월 이내에 부분적으로 디폴트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들은 이런 잠재적 불확실성에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스티븐 도버 / 프랭클린템플턴 연구소장마켓 나우 일본 장기침체 혁신적 제조업 생산성 향상 오늘날 경제학

2024-01-15

[마켓 나우] 1월 지표 삼중주와 새해 미국 증시

새해가 밝으면 주식시장은 1월 성과에 주목한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의 주가 움직임이 한 해 전체의 투자 성과를 좌우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일찌감치 이런 주식시장의 규칙성에 주목한 인물이 예일 허시였다. 마치 점성술사가 천체의 규칙성에서 미래를 읽어내듯 허시는 주식시장의 규칙성으로 주가의 방향을 예측했다. 산타랠리, 1월 바로미터, 5월 매도 등이 그가 발굴한 주식시장의 주요 규칙성들이다. 이들을 조합해 1968년부터 매년 ‘주식 트레이더 연감’을 발간하며 한해 주식시장을 예측해왔다.     허시가 고안한 지표 가운데 적중률이 가장 높은 것은 ‘1월 지표 삼중주(January Indicator Trifecta)’다. 1월에 세 가지 지표가 순차적으로 모두 상승하면 그해 주식시장이 활황일 가능성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첫째 지표는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기대하는 ‘산타 랠리’다. 한 해의 마지막 5거래일과 새해의 첫 2거래일을 합한 7거래일 동안 주가가 상승하는 산타 랠리가 펼쳐지면 첫 번째 파란 불이 켜진다. 둘째는 새해 첫 5거래일 동안의 주가 움직임이고, 마지막은 ‘1월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1월 한 달간 주가 움직임이다. 산타 랠리에 이어 새해 첫 5거래일 동안 주가가 상승한 후 1월 한달을 강세로 마감하는 해에는 1년 동안 주가가 오를 확률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1950년부터 2023년까지 삼중주가 성공한 해 가운데 주가(S&P500 지수)가 상승 마감한 해의 비율은 90.6%를 차지했고 평균 주가 상승률은 17.7%에 달했다. 2023년을 돌아보면 산타 랠리(0.8%)와 함께 첫 5거래일 랠리(1.4%)와 1월 랠리(6.2%)가 이어지면서 한 해 동안 2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주가가 크게 하락했던 2022년엔 비록 산타 랠리는 찾아왔지만, 첫 5거래일과 1월 한 달 모두 부진한 장세를 면치 못했다.   허시가 발견한 규칙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 수치는 결국 ‘모멘텀(상승 탄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멘텀은 많은 학술 연구에서도 기업의 규모, 가치 등과 함께 주가 수익률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밝혀진 바 있다. 스포츠에서 기선 제압이 팀의 승리에 유리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주식시장에서도 연초에 호재가 악재를 이겨내는 모멘텀이 연말까지 지속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실현적 예’도 작용한다. 규칙성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투자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믿음에 맞춰감으로써 기존 규칙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2024년엔 삼중주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지난 1월 3일까지 7거래일 동안 S&P500 지수가 0.9%   하락하며 산타 랠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정혁 /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마켓 나우 미국 삼중주 지표 삼중주 5거래일 랠리 주가 움직임

2024-01-07

[마켓 나우] 기술 발전은 소득불평등을 악화하는가

소득불균형 심화는 1990년대 이후 경제학계가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가설이다. 주요국들이 경제적 약자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산업정책과 보호무역 등 국가 이기주의를 강화하는 근본 이유도 소득불평등 확대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소득분배 악화라는 장기 추세에 변화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구 고령화, 인공지능(AI)·로봇 등 기술 발달, 정부 개입 강화 등이 가져온 결과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정체기를 넘어 감소가 예상된다. 생산요소가 희소해지면 그 요소의 가격(임금·이자·지대 등)은 오른다. 이민을 늘리지만 충분치 않다. 독일은 경기침체에도 70여만개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이고, 최근 베를린은 운전기사 부족으로 공공 버스 서비스 감축을 발표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은 AI·로봇 등 기술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기술로 대체되기 어려운 육체 노동자나 대면 노동자들의 일인당 자본량, 즉 자본장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저임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과 임금 상승은 당연한 이치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데이비드 오터 교수와 동료학자들은 2023년 3월 논문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의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는데, 특히 소득 하위 10% 근로자의 임금이 가장 빠르게, 상위 10% 근로자 임금이 가장 느리게 올랐다고 밝혔다.   개입주의든 포퓰리즘이든 정책변수도 저소득층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주요국 정부는 경제적 약자의 고용 증가와 임금 상승을 위해 지출을 늘린다.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에서 실질최저임금이 유지되거나 인상되는 이유다.   요컨대 기술발전과 함께 인구고령화와 정부지출 증가로 소득분배와 관련한 변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주로 미국·유럽 이야기이고 우리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청년고용이 여전히 부진한 데다 AI 등 기술이 소득불균형을 완화하기보다는 직장을 빼앗을 가능성에 우려가 큰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술 확산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기술 도입에 따른 한 부문의 생산성·소득 증가는 다른 부문의 수요·고용 증가 등 파급효과를 낳는다. ‘기술발전은 소득불균형 확대를 불러온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구고령화 등 여타 환경변화를 고려해 기술발전의 영향을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AI 등 기술 확산이 소득분배를 개선한다면 이는 엄청난 축복이다. 성장과 분배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각국이 기술개발에 힘을 모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분배구조를 개선할 수도 있다. 신민영 / 홍익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마켓 나우 소득불평등 기술 소득불평등 확대 기술 발달 근로자 임금

2023-12-27

[마켓 나우] 중국, 부동산 위기 막느라 은행은 체질 약화

중국 정부는 경기침체기에 은행 시스템을 ‘경기 대응 도구(countercyclical tool)’로 자주 활용한다. ‘경기 대응 도구’는 경기순환의 영향을 반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정책이다. 현재 진행 중인 부동산 시장의 조정 과정에서 은행에 진통제 역할을 맡기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최근 중국 당국은 은행들에게 부동산 개발 업체들에 대출을 신속하게 늘리라고 권장한다. 부동산 프로젝트들의 완공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전국적인 데이터를 살펴보면,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미완성된 주거 부동산을 완공하는 데는 최소 4년에서 6년이 걸릴 전망이다. 극단적인 경우, 비교적 가난한 구이저우성(貴州省)의 주택 건설은 20년 이상 걸릴 수 있으며, 장시성(江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 등 다른 몇몇 성도 적어도 10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조치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당면한 자금 수요를 충족시켜 최근 컨트리가든(碧桂園)이나 헝다그룹(恒大集團)에서 발생했던 채무 불이행이나 미납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이번 부동산 시장의 가격변동주기에서 빠져나올 때 필연적으로 수익성이 훨씬 떨어지고 자본충실도가 훨씬 낮은 모습일 것이다. 주거 부실대출(NPL) 비율이 9%까지 치솟았던 2007~10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와 비슷한 수준의 시장 조정이 발생한다면 은행 대출 기관의 위험 노출은 1.3조 위안(약 23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정도면 중국 은행 시스템이 감당할 만큼 작은 규모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부동산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다. 부동산 침체에 따른 대출 증가는 ‘J 커브’를 따라 더 빠르게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저금리 환경에서 은행은 수익 마진에서도 타격을 입는다.   취약한 은행들은 체질이 더욱 약해질 우려가 있다. 특히 정부 지원이 점점 선택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소규모 지방 은행들은 지속적인 생존 압박을 받을 것이다.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농촌 지역 상업은행의 부실대출 비율이 3.2%, 대형 상업은행은 1.3%이다. 훨씬 높은 부실대출 비율과 미흡한 자본 완충 능력으로 인해 지방 상업은행들은 신용 스트레스를 증가시키지 않는 부동산 대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중국 부동산 침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규모로 장기간 지속될 것이지만, 결국 중국 당국이 금융 위기 없이 침체를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이 있다. 탄력성이 떨어진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향후 통화정책의 전달 메커니즘을 약화할 것이다. 루이즈 루 /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중국 부동산 부동산 개발업체들 부동산 침체 부동산 시장

2023-12-18

[마켓 나우] 순진했던 북미 배터리 시장 전망

지난해 12월 15일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열린 ‘배터리 얼라이언스’ 회의에서 2025년 한국 기업들의 북미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70%로 예상하는 발표가 나왔다. 또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규정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제도를 활용해 19조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전해졌다. 이런 장밋빛 전망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점유율 70%’ 시나리오의 근거는 다음 몇 가지였다. 첫째, IRA는 탈중국이 목적이기에 중국 혹은 중국계 배터리 제조사는 북미 시장 진입이 어려울 것이다. 북미 시장은 한국과 일본의 제조사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북미 기원 제조사는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셋째, 북미 지역 배터리 생산 설비 중 한국 관계사 비중이 70% 가까이 되는데, 공급 부족 덕분에 생산하는 족족 모두 팔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근거는 천진난만했다. 2023년은 이런 전제의 비현실성이 드러난 한 해였다. 미국 기업 테슬라의 4680 중대형 원통형 배터리가 2026년 이후 텍사스 기가팩토리에서 연 100GWh 규모의 생산 설비를 통해 생산될 예정이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셀은 IRA 유예 기간을 잘 활용하여 북미 시장에 진입에 성공했다. 이에 더해 파나소닉의 ‘중대형 배터리 사업 집중 선언’은 북미 배터리 전쟁의 긴장도를 더욱 높였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지난 1일 발표된 해외우려기관(FEOC)의 지침 초안이다. 중국 자본 지분율 25% 이상인 합작사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지침은 겉으로는 ‘조건부 불허’이지만, 뒤집으면 ‘조건부 허용’이다. 중국 민간 기업의 북미 진출 길이 사실상 열린 것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인 CATL이 포드·테슬라와 준비하던 기술 라이센싱형 LFP셀합자사도 조건부로 허용된다. 앞으로 지분 25% 이하의 중국 민간 기업이 설립한 합작사가 부품·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겨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기업이 참가하는 양극활물질 전구체 합작사의 중국 측 지분을 낮춰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사이의 AMPC 배분율도 불리하게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나쁜 소식도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LG엔솔의 연구개발 투자가 CATL에 비해 심각하게 열세라는 실상이 얼마 전 노출됐다. 양적 성장에 집중하느라 질적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소홀히 했음이 밝혀지며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LG엔솔의 신임 CEO가 ‘질적 성장’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더 어려워질 환경에서 규모에 걸맞은 질적 성장을 이루려면 아낌없이 기업 리더십을 지원해야 한다. 박철완 /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마켓 나우 배터리 순진 북미 배터리 북미 시장 배터리 제조사

2023-12-13

[마켓 나우] 인플레이션 2% 안착의 마지막 고비

‘마지막 마일’(final mile)은 어떤 가치 있는 노력의 마지막 단계다. 물류에서는 배송의 최종 지점을, 등산에서는 정상 직전의 오르막을 가리킨다. ‘마지막 마일’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성공적이면서 지속가능하게 달성하고 있을 때도 쓸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경우, 2022년 개인소비지출지수(PCE) 기준 인플레이션이 5.8%로 정점을 찍었을 때 통화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마일’은 9월에 3.7%였던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는 과제다.   많은 경우, 마지막 단계가 가장 큰 대가를 요구한다.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일까. 이 질문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은 남은 역경을 헤쳐 나갈 준비가 되었을까. 주식·채권·통화의 현재 가격을 봤을 때 대답은 ‘글쎄, 아니요’일 것이다.   파월 의장은 지속적인 저인플레이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에 얼마간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기록으로 본다면, 2%의 지속가능한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잠재 성장률보다 낮은 경제 성장률과 노동 시장 상황의 일부 악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논거가 부족하다. 첫째, 지난 65년 동안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가 없었다. 둘째, 지난 12개월 동안 미국의 모든 인플레이션 지표가 급락하는 동안, 실업률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았고 경제 성장률도 추세 이하로 큰 폭으로 내리지 않았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면, 연준은 경제가 추세 성장률 이하로 둔화하고 실업률이 오를 때까지 꽤 엄격한 통화 및 금융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도한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금리를 더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예측대로 흘러간다면 예상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그 결과 미국 주식시장과 달러는 약세를 띨 것이다. 최근 급등한 미국 5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연준이 양적 완화로 돌아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크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금리 인하는 현재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늦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준의 긴축 시간이 길어진다면 장기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금융 비용 등에 더 민감한 10년물 이상의 국채가 투자 관점에서는 더 유리할 것이다.   ‘마지막 마일’은 종종 가장 힘든 시기다. 미국 통화정책과 관련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희망’만으로는 전략이 될 수 없다. 투자자는 힘든 마지막 고비에 대비해야 한다. 스티븐 도버 / 프랭클린템플턴 연구소장마켓 나우 인플레이션 안착 인플레이션 목표 인플레이션 지표 기준 인플레이션

2023-12-10

[마켓 나우] 영국의 총선용 감세, 다음 정부에 ‘독배’

내년 총선에서 패색이 짙은 집권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감세를 단행한다면? 설령 감세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라도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지난달 22일 200억 파운드(약 32조원) 규모의 감세를 발표했다. 올해 영국 경제가 0.6%, 내년에는 0.7%의 저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감세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감세의 주요 수혜자가 부자와 대기업이고, 공공지출은 대폭 줄이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크다. 보수당의 정책은 여당보다 지지율이 20%p 정도 앞선 노동당의 대규모 투자 및 증세 공약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업의 설비 투자 등을 전액 비용으로 인정해 세금 부담을 낮춰주는 정책은 기업은 물론이고 야당도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건강보험료율을 소득의 12%에서 내년 초부터 2%p 내린 것은 2년 전 자신들이 실행했던 인상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잉글랜드에서 시급한 수술을 제외하고 병원 치료 대기자 수가 650만 명이 넘는데, 건보료 부담 인하로 인해 대기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보수당 정부는 물가상승을 상쇄할 만큼 공공투자를 증액하지 않는다. 건보 투자의 상당수가 정부 재정과 납부료인데, 이게 줄어들면 대기자수 증가는 뻔하다.   더 큰 문제는 대규모 증세에도 가계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 데 있다. 진보 싱크탱크 레절루션재단은 지속되는 고물가와 저성장 때문에 가구당 소득이 마지막 총선이 있었던 2019년 12월부터 다음 총선 데드라인인 2025년 1월까지 평균 1900파운드(약 310만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독립기구인 예산책임처(OBR)의 추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OBR은 이런 대규모 감세가 앞으로 5년간 겨우 0.3%의 경제성장 증가에 기여한다고 추정했다. 2010년부터 집권 중인 보수당 정부는 1950년대 초부터 집권한 정부 가운데 ‘실질소득이 감소한(-3% 정도 예상) 유일한 정부’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감세안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보수당이 총선을 내년 초로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5년 1월 말까지 총선을 치르면 되는데, 여당이 보기에 감세 효과가 실생활에 반영되는 봄이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이번 감세로 곤혹스럽다. 200억 파운드의 감세를 만회하려면 저성장 예상 속에서도 증세가 불가피하다.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감세안이 내년 총선에서 집권이 유력한 노동당에 ‘독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당은 정권 획득이 목적이다. 그렇지만 무리한 감세는 두고두고 국민 경제에 부담이 되고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병억 / 대구대 교수(국제관계)마켓 나우 영국 총선용 감세가 경제성장 보수당 정부 대규모 감세

2023-12-06

[마켓 나우] 미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 통할 수 있을까

역사학자 크리스 밀러의 『칩워』(2022)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반도체 정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베스트셀러이지만 혹평도 쏟아졌다. 반도체 연구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왔고 어느 정도 혁신이 가능한지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다는 점과 미국중심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정책 오류를 정당화할 가능성도 경계 대상이다.   이 책의 핵심은 미국이 반도체 장비나 기술의 일부만으로도 전체 공급망을 제어하고, 이를 통해 타국의 기술발전을 통제하는 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미국만큼 반도체 공급망에 고통을 줄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미국은 3㎚ 기술이나 최첨단 메모리 제품의 자체 생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산망 교란으로 인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칩워』는 ‘먼저 주먹을 휘두를 의사의 유무’가 주도권을 결정하는 동네 주먹 세계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정당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쟁 논리에도 위배된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를 자국으로 리쇼어링하는 것도 현재로선 성공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반도체는 장비와 소재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팹을 운영하는 각종 노하우, 수직계열화된 소재·부품·장비 인력과 산업생태계가 같이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글이나 메타가 상징하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이 분야에 인재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 같은 제조부문은 부가가치 부족으로 우수한 인재유치가 어려워 해외로 이전됐다. 이제 와서 보조금 정도로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까. 공장 몇 개 짓는다고 반도체 제조업이 부활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규제로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현실이라는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 최근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과 장비산업이 급속한 성장세다.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는 7㎚급 칩을 만들었고, 팹리스 기업들도 활황세다. EUV 대체기술, 차차세대 소재기술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규제는 국산 장비의 중국 수출 감소, 중국 내 메모리공장 운영 제한 등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희생을 강요한다. 합리성과 충돌하는 경제적 봉쇄 정책은 미국이 미·중 경쟁에서 앞서는 데 필요한 탄탄한 동맹네트워크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기술, 특히 제조 부분의 중심은 아시아로 넘어온 지 오래다. 미국은 흐르는 강물을 되돌리기보다는 미국이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는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순리다. 기술의 세계에서 통제로 혁신을 이길 수 없다. 이병훈 /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마켓 나우 미국 반도체 반도체 제조업 반도체 기술 반도체 장비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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